[ 2026. 1.27 ]
마르코 3,31-35"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어머니고 내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31-35)
각자에게 틈이 있습니다. 사람이 틈이 있는 것은 부족이라기 보다는 소명같습니다. 그 틈은 하느님이 들어오시는 통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도 노래하니다: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51,19)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고 약할 때 강하다고 고백합니다. (2 코린 12,9-10)
오늘 복음에서도 그 은총의 틈을 만납니다. 틈으로 밖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안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에 있던 밖에 있던 기준선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의 존재로 우리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오늘 이름 모를 사람들이 그 틈을 이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연결시키는 다리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과 밖사이에서, “틈”에서, 간극에서 신앙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간극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어떤 이들은 그 간극을 다른 사람들이 건너게 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 틈사이에서 건너가려고 암중모색을 하고, 어떤 이들은 틈의 존재에 무게를 두지 않고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바로 그 사이에 놓인 ‘틈새’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안에 설 것인가 밖에 설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이에 어떻게 설 것인가에 대한 부르심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밖이나 안이 아니라 틈에서 사이에서 부르십니다. 틈은 은총이 살아있는 관계의 공간입니다.
질문: 예수님과의 ‘사이’를 ‘틈’을 나는 어떤 역할로 살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