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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From Fr. Macario

오늘의 묵상 From Fr. Macario

[ 2026. 6.3 ]

마르코 12,18-2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26-27)

성 이레네오 주교는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지 숨을 쉬고 하루를 견디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며,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주님과의 의식적인 접촉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지금도 나를 바라보고 계시며, 나를 부르고 계시며, 나를 당신 생명 안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가운데 작은 제대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주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 제가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살아 있다는 것은 또한 주님의 뜻이 걸어가시는 길에 우리 마음도 함께 발을 맞추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상처 입은 이를 바라보실 때, 우리 눈도 그를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뜻이 주님의 뜻과 조율될 때, 삶은 더 이상 우연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가 됩니다.

결국 하느님의 영광은 인간이 스스로를 과시할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참된 생명을 회복할 때 드러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은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 주는 작은 성전이 됩니다.

그러나 죽음의 표지는 경직성입니다. 우리 안에서 죽어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긴지 돌아봅시다. 우리는 “산 이들의 하느님”의 자녀이면서도, 마치 죽은 이처럼 굳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시체가 굳어 있듯, 우리 마음도 얼마나 자주 굳어 있습니까? 들으려 하지 않고, 변화되기를 거부하며, 새로운 것에 경기를 일으키고, 알 수 없는 것을 옆으로 밀어내고, 내 뜻과 판단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물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아직 굳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러나 죽음은 단지 생의 마지막 순간에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경직된 사고 속에서 우리는 이미 조금씩 죽음의 질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의 신앙의 순응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오늘도 우리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일으켜 주시기를 청합시다.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죽은 듯 멈추어 있는 우리 신앙의 심장이 다시 뛰게 해주시도록 청합시다.

질문: 나는 어떻게 살아 있는가?